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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매몰비용에 대한 정보

호주 시드니 하면 떠오르는 명소가 오페라하우스다. 요트의 돛을 연상시키는 조가비 모양의 흰 지붕이 푸른 바다와 멋진 조화를 이루는 세계적인 건축물로, 국제 공모를 통해 1위로 선정된 덴마크 건축가 요를 웃손의 설계로 1973년 완공되었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가 개관식 테이프를 잘랐고 200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 그만큼 해마다 엄청난 관광객이 몰려드는 명소다. 그런데 이런 명소가 건축 과정에서는 엄청난 애물단지였다. 1957년 공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6년 뒤인 1963년 개관을 목표로 공사비 700만 달러면 완공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착공하자마자 예상치 못한 온갖 문제들이 쏟아졌고, 공사는 더디기만 했다. 공사가 늦어질수록 돈이 더 들어갔고, 문제를 보완하느라 공사가 더 지연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결국 총 1억 200만 달러를 들여 완공되었다. 애초 예정보다 10년이 늦어졌고, 비용은 14배나 더 든 것이다. 심지어 개관 날짜에 맞춰 결혼식을 올리려던 커플이 완공된 뒤에 확인하니 이혼해 있더라는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대규모 국책사업이 본래 계획보다 비용이 최소한 2~3배 든 사례가 허다하다. 새만금 사업은 애초 1조 3,000억 원의 공사비를 예상했지만 2배가 넘는 3조 4,000억 원이 들었다. 경부고속철도는 5조 8,000억 원이면 완공 가능하다고 시작했는데 결국 3배가 넘는 18조 원이 투입되어야 했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질까? 국책사업은 워낙 큰돈이 드는 사업이기에 전문가들이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비용-편익 분석을 통해 꼼꼼히 사업성을 따진다. 하지만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실행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변수를 예측할 수는 없다. 이를테면 공사하는 동안 일어나는 주민과의 마찰, 공사장 안팎의 사고, 환경단체의 반대 시위, 갑작스러운 천재지변, 자재 공급의 차질, 자재 및 인건비 상승, 정치적인 논란 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인이든 정부든 거창하고 확실해 보이는 계획일수록 의심하고 따져보는 게 상책이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이자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이런 문제들에 주목했다. 사람들이 과도하게 낙관적인 예상을 하지만 실제 결과는 딴판인 경우를 숱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무언가 계획을 세울 때 최적의 상황만을 상정해 소요시간, 비용, 노력 등을 적게 잡는 경향을 카너먼은 '계획 오류'리고 불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성공을 평균적인 성공 가능성보다 자신하는 낙관주의 편향을 지닌다. 이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 생각에 부합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심리가 강한 탓이다. 학창 시정 방학을 맞아 공부, 독서, 운동 들 거창한 계획을 짜 놓고 과연 얼마나 실천했는지 돌아보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계획 오류와 관련하여 심리학자들의 흥미로운 실험이 진행되었다. 연구팀은 심리학과 대학생들에게 논문 1편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정확히 예상해보도록 했다. 학생들은 일반적일 때,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경우, 모든 단계에서 문제가 생긴 경우 등 3가지 상황별로 예상 시간을 적어냈다. 각 경우의 평균 답변은 48.6일이었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실제로 논문 1편을 쓰는 데 얼마나 걸렸을까. 평균 55.5일이었다. 모두 순조로울 때보다 2배였고, 전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때보다도 1주일이나 더 걸린 것이다. 계획 오류는 개개인은 물론 기업, 정부 등 사람의 집단이면 어디서든 관찰되는 현상이다. 대개의 사람은 과잉 낙관주의와 자기 과신에 빠져 스스로 성공 가능성을 과대평가한다. 남성 운전자의 90%가 스스로 운전을 잘한다고 여기는 '착각설 우월성'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앞으로 벌어질 모든 변수를 예측하고 철저히 대비책까지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인간이 아닌 신의 영역이다. 행동경제학으로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경제적 인간을 전제로 하는 경제이론과 달리, 심리학을 접목해 인간이 실제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하는지를 규명하는 경제학의 새 분파,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이 대체로 합리적이기는 하지만 심리적 편향과 오류 가능성을 안고 있어 제한적 합리성을 가진다고 본다. 계획 오류는 필연적으로 매몰 비용의 오류를 유발한다. 매몰 비용은 이미 지급하여 다른 결정을 하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비용을 뜻한다. 엎질러진 물이다. 매몰 비용의 오류는 그동안 들어간 돈이 아까워서 다른 합리적 결정에 제약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뷔페식당의 이라죠는 이미 낸 돈이므로 돌려받을 수 없는데, 그 돈이 아까워서 배탈이 날 정도로 먹게 된다. 많이 먹을수록 한 접시당 단가가 낮아져 '싸게 먹었다'는 심리적 위안을 얻는 것이다. 계획 오류 계획 오류 탓에 공사 기간이 10년 더 걸리고 비용은 14배가 더 들어갈 때까지 호주 정부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도 매몰 비용의 오류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계획 오류나 매몰 비용의 오류를 예방할 수는 없을까? 계획 오류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내부 관점과 외부 관점의 조화를 제시했다. 내부 관점은 계획 입안자들이 그들을 둘러싼 구체적 환경에서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 속에서만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내부 관점에 몰입되면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국 국방부 장관이 언급한 '언 노훈 언노운스', 즉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이르고 만다. 특히 입안자의 권한이 크면 클수록 계획 오류에 빠질 가능성은 기하급수로 커진다. 독재자나 능력 있는 CEO일수록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가장 권력이 약한 사람에게 계획을 짜게 하는 것이 계획 오류를 줄이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