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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계획경제의 오류에 관한 정보

인류 역사에서 유토피아의 실험은 끊이지 않았다. 인간 행동을 통제할 수 있으며, 정부가 이상 사회를 설계할 수 있는 완벽한 지적 능력을 갖췄다는 뿌리 깊은 신념 탓이다. 플라톤에서부터 루소,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불완전한 인간의 오류 가능성과 역사는 정해진 길로만 가는 게 아니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미리 결론을 정해놓은 채 그에 맞춰 인간을 통제하고 교육을 통해 개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현실에서는 누구에나 하루 24시간이 똑같이 주어진다. 빌 게이츠나 서울역 노숙자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시간은 공짜가 아니다. 돈을 빌린 신만큼 이자를 물어야 하고, 고용주는 고용한 자원의 시간을 사는 만큼 입금을 주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늘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희로애락을 공유하고 살아간다. 무한한 욕구와 한정된 자원의 이율배반 속에 벌어지는 사람들 사이의 경쟁과 협력, 조화와 갈등의 역사는 인간 사회에 관련한 다각적인 학문 영역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정치적,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등의 사회과학이다. 물론 경제학도 사회과학의 한 분야이다. 사회는 개개인이 모인 무형의 집단이며, 그 자체의 운동원리와 역동성을 가진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해서 사회의 선택이 늘 합리적인 것만은 안디. 개인이 편향과 오류에 빠지듯 사회도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대중 심리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사회과학의 관심은 경제학의 관심과 일치한다. 최근 들어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한 행동가 제학이 주목받고, 경제학의 관심사가 정치적 의사결정과 국제관계로까지 확장되는 추세다. 더 이상의 영역 또는 경제의 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장에서는 사회적 현상 및 사회과학의 다양한 경제원리 사이의 공약수를 찾아보면 된다. 그러려면 정부가 나서서 사회와 경제, 사상 들을 계획하고 통제해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는 경제를 규정한다. 공동체를 개인보다 우선하고 사회를 의도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믿음은 경제 분야에서 계획경제체제로 귀결된다. 계획경제란 경제 발전이 의도적인 설계 때문에 달성될 수 있다고 보는 체제다. 따라서 자유로운 시장의 역할을 제한하고 중앙정부가 시장을 대신한다. 중앙정부 엘리트들의 치밀한 설계를 통해 생산과 공급을 계획함으로써 과잉 생산, 과잉 설비, 실업 등 자본주의의 비효율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윤과 사유재산을 전부 또는 일부 부정하며,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생산물의 배급은 필수다. 하지만 수백만 명의 경제활동을 일일이 계획하려면 중앙정부는 필연적으로 거대화되어 비효율적인 관료주의로 치닫게 될 확률이 높다. 공동생산, 공동소유를 지향하는 이상주의가 하나같이 실패한 것은 인간 본성에 내재한 욕망과 이기심을 부정하고 거슬렀기 때문이다. 사람은 대부분 자기 것은 아껴도 남의 것은 헤프게 쓰고, 내게 이득이면 남에게 해가 되더라도 행동한다. 남보다 나은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열심히 일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철저히 교육하고 비밀경찰로 억압해도 사람의 욕망마저 없앨 수는 없다. 경제학자는 인간 행동을 통제하고 역사를 설계할 수 있다는 오도된 신념을 '치명적 자만'이라고 규정했다. 경제와 사회를 원하는 대로 디자인하는 데 필요한 모든 지식을 갖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정부의 계획과 규제가 없는 자유시장 많이 번영과 발전을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1950년대 중국의 마오쩌둥은 신속한 산업화 계획을 세우고 농촌 인구를 대거 징발해 대약진운동을 펼쳤지만 기간 중 흉년이 겹치면서 추녀만 명이 굶어 죽는 비극이 벌어졌다. 착각과 치명적 자만이 빚어낸 대참사였다. 계획경제 아래 중앙정부가 수많은 사람의 제각기 다른 욕구와 능력을 일일일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가 무엇을 생산할 수 있는지, 누구에게 무엇이 얼마나 필요한지, 어떻게 공급할지, 어디가 남고 어디가 부족한지 등을 파악하는 것은, 10명 안팎의 소집단이라면 가능할지 몰라도 수백만, 수천만 국민이 사는 국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사유재산과 이기심을 부인해 성취동기를 갖지 못한다면 너도나도 무임승차를 꾀해 결국 국가의 생산 능력이 급속히 저하될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시장경제는 누군가의 명령이나 통제 없이 시장에서 가격을 통해 수요와 공급이 자연스레 조절된다는 장점을 지닌다. 가격이 오르면 생산자는 공급을 늘리고 소비자는 수요를 줄여 가격이 내려감으로써 자연스레 수급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이런 가격 시스템에서는 정부가 일일이 국민의 생산 능력이나 욕구를 파악할 필요가 없다. 국민은 자기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각자 열심히 일한다. 그 결과 생산성이 높아지고 국부가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된다. 물론 시장경제에도 문제점이 없는 것이 아니다. 빈부 격차 같은 것이 그러하다. 따라서 정부 만능주의 못지않게 시장 만능주의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금융이 비대해지면서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제어장치가 작동하지 않을 때는 자칫 심각한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 하지만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시장경제체제가 계획경제체제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은 동유럽 붕괴로 입증되었다. 오늘날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지향하더라도 경제 운용까지 완전한 계획경제를 고집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옛 소련에서 유행했던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가 잘 설명해준다. '국민은 일하는 척, 정부는 배급하는 척'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