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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천연자연과 근본자원에 대하여

1959년 네덜란드 앞바다에서 대규모 가스전과 유전이 발견됐다. 훗날 북해 유전으로 이름 붙여진 세계 4대 유전 가운데 하나다. 네덜란드는 가스와 원유 수출로 엄청난 오일달러가 쏟아져 들어와 호황을 누렸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오일달러가 들어오면서 통화가치가 급등했고, 물가가 뛰자 덩달아 임금이 오르고 다시 물가가 뛰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네덜란드 제조업의 경쟁력은 급격히 하락했다. 국민은 더 많은 복지를 요구했고 근로의욕은 떨어져 불법파업과 공장 폐쇄가 잇따랐다. 이런 와중에 1973년과 1979년 두 차례의 석유 위기는 네덜란드 경제를 완전히 나락에 빠뜨렸다. 1981~1983년 당시 국민소득은 8분기 연속 감소했고, 3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실업자는 매달 1만 명씩 늘어나 1984년에는 80만 명까지 치달았다.  1960-1070년대의 네덜란드처럼 갑작스러운 천연자원의 발견으로 엄청난 외화가 유입되면서 잠깐 호황을 누리지만 곧 물가와 임금이 급등하면서 경제 활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현상을 '네덜란드 병'이라고 부른다. 평범하게 잘 지내던 사람이 갑자기 로또에 당첨됐을 때 어떻게 변할지 상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네덜란드 병은 자원이 풍부한 국가일수록 경제 성장이 둔화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자원의 저주'와 같은 의미다. 자원 부곡일수록 지하자원을 채굴해서 파는 데만 의존해 다른 산업이 발견하지 못하고, 근로의욕과 생산성이 떨어져 국가경쟁력이 뒤처지는 현상을 말한다. 특히 이런 나라들은 정치가 불안정하거나 통치자가 장기간 집권한 독재정권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자원을 팔아 벌어들인 부가 제대로 분배되지 못해 빈부 격차가 크다는 특징을 가진다. 물론 모든 자원 부곡이 그런 것은 아니다. 호주처럼 풍부한 자원을 토대로 산업을 발전시켜 선진국이 된 경우라면 오히려 '자원의 축복'이라 할 것이다.네덜란드 병이란 용어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석유가 '악마의 배설물'이 될 것을 경고한 인물이 있었다. 세계 3위 석유 수출국인 베네수엘라의 석유장관이었던 그는 설립의 주역이기도 하다. 1970년대 석유 위기 당시 베네수엘라는 원유 가격 급등에 힘입어 재정 수입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상태였다. 1972~1974년에만 재정수입이 4배로 늘자 정부는 그에 맞춰 지출 또한 대폭 늘렸다. 이때 지나치게 불어난 재정지출은 1980년대 저유가 시대가 초래한 뒤에도 줄이기 어려워졌다. 오일달러로 국민에게 제공해온 복지를 돈이 없다는 이유로 당장 중단했다가는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중남미 좌파 동맹의 맹주를 자처했던 배경 아래서 정권을 잡았다. 그는 몇 년 뒤 빈곤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화려하게 복귀할 만큼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정부가 오일달러로 베푸는 복지에 길든 국민에게 일할 의욕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수시로 산업을 국유화해버리는 바람에 외국인 투자자도 사라졌다. 원유를 캐서 수출하는 것 외에는 내세울 만한 산업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남게 된 것은 연평균 20%가 넘는 물가 상승률에다 한 해 2만여 명이 목숨을 잃는 범죄율, 그리고 빚더미였다. 100만 명이 넘는 지식인, 자본가, 기술자 등 핵심 인력이 나라를 버리고 미국 등지로 이민을 떠났다. 석유는 차베스에게 화수분이었지만 국민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된 것이다. 네덜란드 병은 풍부한 지하자원이 반드시 축복만은 아니며, 심하면 되레 저주가 될 수 있다는 역설을 잘 보여준다. 또 다른 예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남태평양의 소국 나우루 공화국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철새들의 낙원인 나우루 섬은 새똥이 땅과 산호에 스며들어 하층토에 막대한 인산염 매장 층을 형성했다. 그 덕에 1967년 독립한 나우루는 돈방석에 올라앉았다.정부는 갑작스레 얻은 부를 토대로 국민에게 모든 것을 제공해주었다. 사람들은 그저 먹고 즐기고 소비하면 되었다. 서구 사회에서도 한 가정에 자동차가 1대뿐이었던 시절 공화국에서는 6 `7대의 자동차를 보유한 가정이 있을 정도였다. 축제 기간에 달러 지폐를 화장지로 쓰는 광경까지 목격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우루 공화국은 가난한 나라로 전락해 있다. 인구 7,000명 중 50% 비만이고, 당뇨병과 그 합병증으로 하루에 2명씩 죽어간다. 독립 후 40여 년간 스물일곱 차례나 정부가 바뀔 만큼 정치적 불안이 끊이지 않았고, 위정자들의 무능력과 부패는 극에 달했다. 지금은 검은돈을 세탁하거나 여권 판매로 연명하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한국은 어떤가? 이렇다 할 지하자원이 없는 나라이다. 그런 절대 부족 상태가 거꾸로 세계 최빈국에서 두 세대 만에 경제적 선진국 문턱에 이르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과 함께 아시아의 4마리용으로 불리는 대만, 홍콩,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다. 하나같이 비좁은 국토에 사람만 바글대고 자원은 거의 없는 나라들이다. 믿을 구석이라고는 근면하고 진취적이며 부자가 되고 싶은 국민뿐이었다. 이런 대조적인 모습을 심도 있게 파헤친 경제학자가 있다. 미국 교수였던 사이먼은 창의적 인간이야말로 사회를 번영하게 하는 근본 자원이라고 단언했다. 사이먼은 인간의 풍부한 재능과 모험심은 영원히 지속할 것이며, 부족 사태가 야기되어 문제가 발생하면 새로운 수단을 동원해 대응할 수 있고, 이런 조정 기간이 지나면 문제가 발생하기 전보다 더욱 살기 좋아진다고 자신 있게 주장했다. 따라서 인간은 파괴적 존재가 아니라 창의적 존재이며, 인간의 창의성이 지구 자원의 희소성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사이먼이 이 같은 주장을 펼 당시만 해도 세계는 자원 고갈과 인구 폭발 등으로 애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