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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규제와 지하경제에 대하여

1918년 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 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절이며, 그로부터 4년 뒤 대공황이 닥칠 때까지 흥청망청 그 자체였다. 게다가 1920년대는 음주와 술 제조, 판매를 금지한 금주법이 시행됐던 시기다. 이런 시대 배경에서 오로지 성공과 사랑을 향해 달려갔던 개츠비와 사퇴와 호사스러운 삶에 몰두한 데이지가 있었다. 개츠비의 죽음은 1920년대의 파국을 암시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금주령 시대의 미국은 어땠을까? 청교도 이념에 충실했던 미국에서는 이미 1840년대부터 술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주로 새로운 이민자들이 모여드는 대도시에서 술이 제조, 판매되었으므로 금주 운동은 이민 배척 운동과도 관련이 있었다. 금주법이 미국에서 현실화한 데는 우선 알코올 중독이나 범죄를 줄인다는 명분 외에도, 그 이면에 1차 세계대전의 적성국 독일의 이민자들이 맥주 등 양조업으로 부를 쌓는 것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기독교 근본주의 또는 복음주의의 영향력도 금주법 제정의 또 다른 배경이다. 결국 1월 발의자인 하원의원 볼스테드의 이름을 따서 볼스테드 법으로 알려준 전국 금주법, 즉 수정헌법 18조가 제정됐다. 이 법이 1920년부터 발효되면서 미국 내에서 술 공식적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대부분 주에서 금주법이 시행되어 술의 제조, 판매가 법으로 금지됐다. 그러나 이 법은 지켜지지 않았다. 미국인들이 술 끊기를 거부했다. 위스키가 수천 마일에 달하는 국경과 해안선을 통해 마구 밀수입돼, 술의 유통을 막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미국처럼 넓은 나라에서 개인이 술을 만들어 마시거나 파는 것을 정부가 공권력으로 일일이 단속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합법적인 술 생산이 금지되자 밀수로 들여온 술은 가격이 급등했다. 상류층은 밀수된 술을 비싸더라도 마실 수 있었지만 중, 하류층은 그렇지 못했다. 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밀주업자들이 독성이 있는 메틸알코올로 만든 가짜 술이 성행했고, 가짜 술을 대량 유통하면서 조직화하기 시작했다. 전설적인 갱 두목인 알 카포네를 비롯한 암흑가의 마피아가 본격 등장한 것도 이 시기였으며, 밀주 판매를 둘러싼 마피아들끼리의 주도권 다툼 속에 전국이 무법천지로 돌변했다. 결국 대공황을 겪으면서 미국 전역은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1932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루스벨트가 1933년 수정헌법 21조를 통해 금주법을 폐지함으로써 14년간의 대소동은 막을 내렸다. 당시 우리나라 신문에 보도된 기사를 보면 미국의 금주법이 어떤 문제를 낳았는지 알 수 있다. 갱들이 비밀리에 술집을 운영하면서 금주법 이전에 18만여 곳이던 술집이 금주법 시행 10년 만에 오이여 3배 이상 폭증했고, 이에 비례해 미국인의 1인당 연간 술 소비량도 늘었다. 술 규제가 이권을 만들었고, 이권은 범죄를 불러왔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프 케네디도 금주법 수혜자 중의 하나다. 보스턴의 소상인이었던 그는 마피아의 밀주 판매에 개입하면서 큰돈을 벌었고, 그 덕에 대통령까지 배출한 명문가로 올라섰다. 캐나다의 위스키 회사들도 마피아의 후원과 밀수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며 성장했다. 반면 미국의 포도주 산업은 순식간에 몰락해 회복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개츠비는 이 같은 밀주 업으로 단기간에 거부가 된 인물이다. 소설과 영화에서 개츠비가 밀주를 거래하는 장면을 직접 묘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개츠비가 수시로 누군가에게서 전화받는 것을 통해 그가 하는 일을 암시한다. 개츠비는 약국 사업도 했다고 한다. 당시 약국은 의사 처방에 따라 알코올을 판매할 수 있어, 금주법 시대에는 공공연한 밀주 판매 창구였다. 그의 보스 울프심은 1919년 미국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경기를 조작한 박사이자 범죄조직의 거물로서, 누군가의 어금니로 만든 넥타이핀을 자랑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위대한 개츠비가 돈을 벌기 위해 했던 일은 전혀 위대하지 못했다. 금주법의 결과는 고상함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정부는 국민의 건강, 사회 윤리와 질서 등을 보호 또는 권장하기 위해 규제를 만든다. 물론 교통법규처럼 필요한 규제도 많다. 그러나 도덕적으로는 타당한데 현실에서는 결코 작동하기 어려운 금주법 같은 규제도 적지 않다. 역사적으로 술을 금지하려는 시도가 세계 곳곳에서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성공한 사례는 없다. 술은 물이나 쌀만큼은 아니어도 인간 삶에서 결코 없앨 수 없는 윤활유와도 같기 때문이다. 윤활유 없는 엔진은 금발 과열되기 마련이다. 정의감에 불타는 이상주의를 법으로 강제할 때 현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광란과 무법의 1920년대 미국이 극명하게 보여준다. 금지해야 할 당위성, 도덕성이 있더라도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규제는 반드시 부메랑처럼 더 큰 부작용을 유발한다. 사회규범을 법으로 강제하는 '윤리의 법제화'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규제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늘도 짙어진다. 규제의 그늘이 바로 지하경제다. 지하경제란 좁은 의미에서 탈세, 뇌물, 마약, 도박, 매춘, 절도 등 불법 행위와 그에 따른 경제적 이득을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정부가 파악하지 못해 세금을 물릴 수 없는 모든 경제 행위를 총칭한다. 규제와 지하경제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한쪽이 커지면 다른 쪽도 덩달아 커진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세무조사와 자금 추적을 강화하자, 다른 한편에서 5만 원권 지폐와 금괴 같은 금 수요가 급증하는 식이다. 따라서 규제의 첫걸음은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지 않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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