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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국가들의 노동 개혁에 대한 정보

유럽형 복지국가들이 활력을 잃고 만성적인 고용 위기와 재정 적자에 허덕이던 1970~1980년대의 여러 특징이 지금 한국경제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197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우리 경제는 활력을 잃고 저성장과 고령화, 만성적인 고용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아직 만성적인 재정 위기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진전과 정부의 확장적인 재정 기조를 고려할 때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유럽형 복지국가가 지속할 수 없었던 직접적인 원인은 비용의 상승과 노동 시장 경직성 등으로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재정 적자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이들이 복지국가의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걸어왔던 길을 되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1980~1990년대 OECD 국가에서 유행처럼 번지던 소위 신자유주의적 정책 개혁은 노동 비용을 낮추고 복지 재정을 줄이는 과정이었다. 한국경제는 외환위기 직후 연평균 5.3% 성장률은 기록했지만 이후 정권마다 1% 포인트씩 하락해 최근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2.9%까지 떨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럽형의 만성적인 고용 위기 징후도 보인다. 공식 실업률은 4%를 넘지 않지만 구직자를 포함한 광의의 학장 실업률은 11%를 넘나들고, 청년도 공식 실업률은 10% 안팎이지만 확장 실업률은 23~24% 수준에 이른다. 15세 이상 인구 중에서 일하는 사람의 비중은 지난 20년간 58%~60% 수준에 갇혀 있다. 외환위기 이전 5년 평균 60.2%였던 고용률은 그 이후 15년간 58%~59%대에 정체돼 있다가 2013~2017년에 이르러서야 60.4%로 회복되었고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정부 들어서도 고용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년의 고용 정체는 1980~1990년대 유럽의 만성적인 고용 위기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유럽형 복지국가의 함정을 피하고 G7 국가 수준의 경제로 발돋움할 길은 없을까? 그럴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최소한의 필요조건은 이들이 복지국가의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취했던 정책 개혁 패키지들을 선제로 시행하는 것이다. 특히 모든 나라에서 추진했던 노동 개혁을 서둘러 단행하는 것이 급선무다. 1980~1990년대에 이들은 각각의 사정에 맞는 노동 개혁 패키지를 만들어 때에 따라서는 노동조합과 타협하고 때로는 맞서 싸우면서 노동 시장을 개혁했다. 개혁의 깃발을 가장 선명하게 들고 나온 사례는 1980년대 초 영국의 대처 총리다. 대처는 파업을 일삼고 사사건건 정부 정책에 간섭하는 노동조합의 횡포를 바로 잡아야 영국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파업으로 지향하는 노동조합에 맞섰다. 1980년대 다섯 차례에 걸친 지속적인 노동법 개정을 거치며 영국의 노사관계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고 만성적인 고용 위기로부터 서서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노동과 복지 개혁에 성공한 사례가 네덜란드의 유연 안전성 개혁이다. 네덜란드는 영국과 달리 노사가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통해 노동 비용을 낮추고 시간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고용 위기를 극복해나갔다. 보수당 출신의 누들 루퍼스 총리는 강력한 노동 개혁 의지를 천명하면서도 철저하게 노사 단체의 자발적인 사회적 타협을 통해 조금 늦더라도 지속적인 개혁의 길을 걸었다. 1982년 바세나르 협약의 노동계 대표였던 빔 콕 위원장은 1990년대 채무부 장관 시절 진보당 집권과 함께 총리로 지위가 바뀌면서도 사회적 대화와 타협 노선을 견지하며 지속해서 노동 유연화 개혁을 밀고 나갔다. 또 하나의 유형으로 제시할 수 있는 사례가 독일의 슈뢰더 총리의 노동 개혁 방식이다. 슈뢰더는 집권 초기에는 노동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일자리를 위한 연대라는 사회적 타협을 통한 노동 개혁을 시도했지만 효과는 별로 없었다. 그는 재집권에 성공하자 2002년 폴크스바겐 사의 노사관계 담당 페터 하르츠 이사를 위원장으로 하고 노사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노동시장현대화위원회를 구성해 개혁안 마련을 일임했다. 정부는 하르츠위원회 합의안을 차례로 시행해나갔다. 하르츠 위원에는 노사정과 공익을 대변하는 세 명씩의 대표들이 참여했지만 조직의 협상 대표로서가 아니라 각각의 입장을 잘 대변할 수 있는 전문가로서 참여했다는 점에서 노사정 타협이라기보다는 전문가 위원회의 중재안을 사회적 합의안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동 개혁의 메뉴와 방식은 조금씩 달랐지만 목표는 노동 비용과 복지 비용을 낮춰 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었다.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영국과 네덜란드는 일련의 개혁을 통해 경제를 회복시키고 65% 전후에 정체돼 있던 고용률을 5년도 안 돼 70% 이상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만성적인 고용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조금 늦었지만 주변 국가들의 성장사례를 참조하며 노동 개혁을 단행했다. 우리나라도 1990년대 노동 비용 안정과 노사관계 개선을 통한 정책적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밀려오는 경제위기를 피할 수 있을 정도로 과감하고 신속하지 못했다. 1990년대 초 기업들은 일본의 사례를 참조하며 노동 비용 안정을 위한 노사 타협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고용 유연화 개혁이라는 칼을 빼 들었고 IMF 외환위기의 한 복판에서 사회적 대타협의 형식을 빌려 정리해고와 파견 근로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법 개정을 단행했다. 그렇다고 해고가 쉬워지고 해고 비용이 낮아진 것도 아니다. 법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 시장 구조와 노사관계의 문제라는 것을 확인한 기업들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비핵심 업무에 비정규직 고용을 확대하고 위탁을 늘려가는 방식으로 노동 비용을 낮추려 했다. 이는 사업장 안의 노동조합과 전쟁을 피하며 노동 비용을 낮출 수 있는 고육지책이었다. 고용 형태가 다양해지고 격차가 심화하면서 비정규직 중심의 노사 갈등이 증가했다. 또한 시장의 이중 구조가 심화하면서 노동 시장의 활력과 효율성은 더욱 떨어졌다. 대기업 정규직 장기근속자가 비자발적인 사유로 전직해야 할 때 임금과 근로 조건이 반 토막 나는 중소기업 일자리나 비정규직 일자리로 옮겨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