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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높아진 의료비 부담에 대하여

국민의 기본적인 건강은 복지국가가 추구해야 하는 주요 목표 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 체계를 구축해 짧은 기간 안에 의료보장제도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국가로 손꼽힌다. 그 결과 국민 의료비 규모나 국민 건강 수준은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어 왔다. 그러나 미래 전망이 과거처럼 밝은 것만은 아니다. 인구 고령화로 의료 수요와 국민 의료비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현재의 의료보장 체계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지속 가능한 의료보장을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사회보장은 출산, 양육, 실업, 노령, 장애, 질병, 빈곤, 사망 등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 필요한 소득과 서비스를 보장하는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복지서비스 및 관련 복지 제도를 의미한다. 의료보장은 사회보장의 일부로서 질병, 부상, 사망 등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보건 의료 서비스를 국가가 제도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일련의 체계다. 건강보험, 의료보험, 노인장기, 요양보험, 산재보험 등은 선진국들이 구축한 대표적인 의료보장 제도다. 이 같은 의료보장제도의 우선 목적은 질병 발생에 따른 과다 의료비 위험을 분산해 일시에 과중한 의료비 부담을 경감하는 것이다. 계층에 따른 의료 혜택의 격차를 줄이는 것도 주된 목적이며 궁극적 목적은 국민의 건강권을 실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의료 보장 역사는 1963년 '사회보장에 관한 법률'과 '의료보험법'을 제정하면서 시작되었으나 1980년 이전까지는 유명무실했다. 사회. 경제적 여건상 건강보험과 같은 의료보장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무리였고, 위생 개선, 식생활 개선, 백신과 같은 필수 의료 공급 등 공중보건 투자가 더욱 시급했기 때문이다. 공중보건 개혁의 결과 1960~1970년대 각종 전염병 퇴치에 성공하는 괄목한 성과를 거두게 된다. 1980년대에 들어서 농촌 기적에서 지역 의료보험 시범 사업을 실시하고 10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 직장 의료보험을 도입함으로써 전 국민 의료보험 실시를 위한 첫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이후 대상 지역과 사업장을 확장하면서 1989년 의료보험 실시 12년 만에 전 국민이 의료보험 자격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지역 의료보험과 직장 의료보험의 조합들을 통합해 2000년에 현재 모습의 국민건강보험이 탄생했다. 실질적인 의료보장성 강화는 2000년 이후 크게 확대되었다. 중증 질환자의 재난적 의료비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2004년부터 본인 부담 상한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저소득층의 상한액을 낮추어 저소득층의 의료보장성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영유아의 건강 증진을 위해 2008년에 6세 미만 입원 환자의 본인 부담금을 전액 면제해주는 정책을 도입했으며, 2017년부터는 6~15세 아동 및 청소년의 입원 진료비의 본인 부담률을 5%로 경감했다. 노인들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국민건강보험 도입 초기부터 65세 이상의 노인에 대해서는 진료비 정액 본인 부담금 제도를 시행했고, 2008년부터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도입했다. 중증 질환자를 의료보장성 확대를 위해 2008년에는 암 환자의 본인 부담률을 10%에서 5%로 낮췄으며, 2013년부터는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이 추진되었다. 그리고 이번 정부는 그동안 MRI, 초음파 등 일부 진료 항목에만 실시되었던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를 대대적으로 확대하고 치매의 국가책임제를 공약하는 등 의료보장성 강화 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와 같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은 세 가지 측면에서 눈에 띄는 효과를 가져왔다. 첫째, 의료비 부담이 줄어들면서 경제적 이유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했던 비율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예를 들어 지역사회 건강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료 접근성이 특히 낮은 저학력 고령자 표본 중 208년도에 경제적 이유로 의료 기관을 이용하지 못한 경험이 있는 비율이 9%에 달했으나 2015년에는 2%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둘째, 국민들의 평균적인 건강 수준이 크게 향상되었다. 대표적인 건강 지표인 출생 시 기대수명을 보면, 1970년 62.3세에서 2016년 82.4세로 괄목한 개선이 이뤄졌다. 셋째, 의료보장성이 확대되면서 경상의료비 중 공공 부문 지출의 비중이 1970년 9.1%에 불과했으나 2016년까지 56.4%로 크게 증가했다. 좀 더 주목해야 할 효과는 국민 의료비 규모가 빠르게 증가한 것이다. GDP 대비 국민 의료비 비중은 1970년 2.8%였으나 2016년에는 7.7%에 달한다. 1인당 실질 경상의료비를 계산해보면 1970년 6만 원 정도에서 2016년에는 230만 원으로 약 50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고도성장으로 소득 증가율이 높았지만 의료비 증가율이 더욱 컸다고 할 수 있다. 의료비 지출이 이렇게 급증한 것은 의료 수요 증가와 의료 서비스의 물가 상승에 기인한다. 인구 고령화는 의료 수요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최근 연구에 따르면 물가를 통제하더라도 인구 고령화는 지난 30년 간 실질 의료비 증가의 약 3분 의 1을 설명한다고 한다. 또한 향후 고령화 추이가 예상대로 지속되면 2030년까지 국민 의료비는 GDP 대비 10.5%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여기에 운동, 식습관 등 생활방식의 악화를 고려하면 의료비 지출은 예상보다 더 높게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