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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경제가 돌아가는 방식에 관하여

소비자들은 최대한 자신의 행복감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며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이다. 간단해 보이는 이 개념은 세상의 작동 원리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 시장경제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강력한 힘이다: 기업이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소비자들이 구매를 원하는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다. 기업은 커피잔에서부터 목숨을 살리는 항생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제품을 만들어 낸다. 또는 기존의 제품을 더 저렴하게 만들거나 더 좋게 만들기도 한다. 이와 같은 경쟁은 소비자들에게 아주 좋은 것이다. 1900년, 뉴욕에서 시카고까지 3분 동안 전화를 걸기 위해서는 5.45달러를 내야 했는데 이는 현재 가치로 140달러에 맞먹는 돈이다. 지금은 무제한 휴대전화요금을 이용하면 똑같은 통화를 거의 무료에 가까운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다. 수익은 기업이 가장 최고의 성과를 올리기 위한 동기부여 중 하나이며, 그것은 고급 교육, 예술, 제약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장은 도덕심이 없다: 비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도덕이란 개념이 없다. 시장은 희소성에 대해 더 많은 보상을 하는데, 그렇다고 희소성이 꼭 가치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이아몬드는 1캐럿에 수천 달러의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물은 당신이 수돗물을 그냥 마신다고 했을 때 거의 공짜다. 그런데 인간은 다이아몬드는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없이는 살 수 없다. 시장은 사람들이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 구매하고 싶은 물건을 제공한다. 이 점을 꼭 구분해야 한다.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가난한 사람들은 보험료를 낼 돈이 없기 때문이다. 최고의 실력을 갖춘 의사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기보다는 할리우드 연예인들의 가슴 확대와 얼굴 리프팅 수술을 하길 원한다. 왜냐하면 비싼 수술비를 흔쾌히 낼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유럽의 범죄조직들은 돈을 위해서라면 동유럽의 어린 소녀들을 납치해 부유한 국가에 매춘 여성으로 팔아넘기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사실 범죄자들은 가장 혁신적인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마약 밀매범들은 코카인을 생산지(남아메리카의 정글)에서 소비지역(미국의 도시지역)으로 이동시켜 막대한 수익을 남긴다. 물론 불법이다. 미국 당국은 잠재적인 소비자들에게 향하는 마약 공급을 차단하기 위해 상당한 자원을 할애하고 있지만 밀매범들은 이러한 당국의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방법을 찾아내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세관 공무원들은 국경을 이동하는 거대한 마약 꾸러미에서 나는 냄새를 귀신같이 맡는다. 그래서 마약 밀매범들은 국경을 통과하지 않고 작은 배를 이용해서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마약을 이동시키기가 더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해안경비대가 마약 밀매범들의 배를 추적하기 시작하자 마약 밀매조직은 해안경비대의 배보다 더 빠른 배에 투자했다. 그러자 미국의 사법기관은 마약 밀매조직의 쾌속정을 추적하기 위한 레이더와 헬리콥터를 도입하기에 이르렀고, 그에 대응하기 위해 마약 밀매범들은 놀랍게도 잠수함을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2006년, 미국 해안경비대는 우연히 15m 길이의 잠수함을 찾아냈다. 콜롬비아 정글에서 만들어진 이 잠수함은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는 잠수함으로 그 안에는 4명의 탑승자와 코카인 3톤이 실려 있었다. 또 2000년에는 콜롬비아 경찰이 마약 밀매범들의 창고를 급습했다가 200톤의 코카인을 운반할 수 있는 30m 길이의 건조 중인 잠수함을 찾아냈다. 미국 해안경비대의 조지프 니미치 해군 소장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비즈니스가 그렇듯 마약 밀매범들도 적발되는 일이 늘면서 법망을 피하기 위한 기상천외한 방법들을 찾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시장은 진화의 과정과 같다. 가장 빠르고, 가장 강하고, 가장 똑똑한 개체에 보상함으로써 더욱 발전할 힘을 끌어낸다. 하지만 우리는 지구 위에서 가장 훌륭한 적응력을 가진 두 생물이 쥐와 바퀴벌레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시장경제는 가격을 이용하여 희소성이 있는 자원을 할당한다: 이 세상의 모든 가치 있는 것은 유한하므로 경제 체제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누가 무엇을 가질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있다. 슈퍼볼 표는 가장 비싼 값을 기꺼이 지급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갖게 된다. 그러나 만약 구소련에서 슈퍼볼과 같은 경기가 있었다면 누가 가장 좋은 좌석에 앉게 되었을까? 아마도 소련 공산당이 선택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때 가격은 전혀 상관이 없다. 만약 모스크바의 정육점에 새 돼지고기가 들어왔다면 여기에는 정부가 정한 가격이 붙었을 것이다. 가격이 너무 싸서 고객이 몰려들더라도 정육점 주인은 가격을 올려 추가 이익을 얻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가장 먼저 줄을 선 사람에게 고기를 팔았을 것이고 늦게 온 사람은 고기를 구매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모두 재화(상품)를 배급한다. 다만 자본주의는 가격을 이용해서 배급하고 공산주의는 줄을 선 순서에 따라서 배급한다(물론 공산주의 국가에도 암시장이 있고, 정육점 주인은 몰래 고기를 빼돌려 훨씬 비싼 가격에 팔았을 가능성이 크다). 자본주의는 가격을 이용하여 재화를 할당하기 때문에 대부분 시장은 가격에 대한 ‘자율조정’ 능력을 갖춘다: 석유수출국 기구 OPEC 회원국의 석유장관들은 정기적으로 회담을 열어 원유 생산량을 결정한다. 이들의 모임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과 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1) 원유와 가스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한다. (2) 정치인들은 석유시장에 개입하기 위한 각종 아이디어를 쏟아 내지만, 그중 대부분은 신통치가 않다. 하지만 가격 인상은 열병과 같아서 병의 증후인 동시에 잠재적인 치료법이 되기도 한다. 정치인들이 의사당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는 동안 다른 중요한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전부다 자동차 사용을 줄이고, 난방비 고지서를 받은 다음에는 다락방의 난방을 중단한다. 그리고 커다란 SUV 대신에 소형차를 선택한다. 고유가는 공급 측면에서도 변화를 가져온다. 석유수출국 기구 회원국이 아닌 일부 석유 생산국들은 고유가의 혜택을 누리고자 더 많은 석유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석유수출국 기구 회원국들 역시 정해진 생산량을 속이고 더 많은 석유를 생산한다. 또한 내 석유 생산 기업들은 유가가 낮을 때는 경제성이 없던 유정에서 석유를 다시 생산한다. 그리고 일부 똑똑한 사람들은 대체 에너지원을 찾고 상용화하는 일에 더 진지하게 매진한다. 그 결과 공급이 증가하고 수요가 감소하면서 석유와 휘발유 가격은 하락하기 시작한다. 시장 가격을 고정하면 기업들은 경쟁을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아낸다: 사람들은 종종 과거 항공기 여행이 막 시작되었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때는 기내식도 맛있었고 좌석은 더 넓었으며 여행객들은 옷을 잘 차려입고 항공기에 올랐다. 이것은 단순히 향수에 젖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현재 항공기 여행의 질은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대신 항공권 가격은 그보다 훨씬 더 빠르게 하락했다. 1978년 이전에는 정부가 항공권 가격을 결정했다. 당시 덴버에서 시카고로 가는 항공권 가격은 어느 항공사든 같았지만 그래도 아메리칸 항공과 유나이티드 항공은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항공사들은 차별화를 위해 서비스의 질을 높였다. 그런데 항공산업의 규제가 완화되어 가격이 자율화되자 소비자들은 가격을 더 중요한 선택의 기준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항공사들은 고객 유치를 위해 가격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고객에 대한 서비스와 그 외 모든 것의 질이 떨어졌다. 대신 평균 항공권의 가격은 인플레이션을 고려했을 때 절반 가까이 하락했다. 1995년에 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여행했다. 여행 중에 들른 주유소마다 서비스가 어찌나 훌륭하던지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직원들은 날이 선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나비넥타이를 한 직원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주유소에 자동차가 들어서면 이들은 재빨리 나타나 연료를 채우고, 기름을 확인하며 창문을 닦아 주었다. 화장실에는 티끌 하나 없었다. 미국의 주유소와는 전혀 달랐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특별한 서비스 정신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아니다. 정부가 휘발유 가격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민간 기업인 주유소들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고객에 대한 서비스의 질에 집중했다. 시장의 모든 거래는 우리 모두의 삶을 개선한다: 기업은 물론 소비자들 역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이 간단한 사실이 막대한 힘을 가진다. 논란이 많은 예를 하나 들어보자.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를 착취하는 아시아의 공장들에 관한 문제이다(그나마 이런 일자리조차 충분치 않다는 것이 더 큰 문제지만). 아시아의 성인 노동자들은 열악하고 임금이 낮은 제조업 일자리를 스스로 선택한다(강제 노동이나 아동 착취는 다른 문제이므로 여기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는 진실이다. (1) 노동자들은 그나마 이런 공장이 최선의 일자리이기 때문에 열악해도 감수한다. (2) 이들 공장의 노동자들은 지식이 적어서 더 나은 일자리 대신에 열악한 환경의 공장을 선택한다. 세계화에 반대하는 대부분 주장은 묵시적으로 두 번째 주장에 바탕을 둔다. 시애틀에서 폭력 시위를 하는 시위대는 국제무역을 줄이면 개발도상국의 노동자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무역을 줄이면 선진국 사람들을 위해 신발과 가방을 만드는 열악한 근로조건의 아시아 공장들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공장의 문을 닫는다고 가난한 국가의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될 수 있을까? 공장을 닫는다고 새로운 기회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인 복지를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해고된 공장 노동자들이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미국에서도 공장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다. 서구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아시아의 공장들은 열악한 일터다. 누군가 순수한 이타주의에 근거해서 나이키라는 회사에 해외 노동자들의 임금을 더 많이 지급하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임금은 빈곤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다. 나이키가 베트남 노동자 한 명에게 지급하는 평균 연봉은 600달러이다. 이것은 많은 돈이 아니지만 베트남 노동자들 평균 연봉의 약 2배에 이르는 돈이다. 12장에서 설명하겠지만 이와 같은 저임금의 열악한 제조업 공장들은 과거 한국과 대만 등의 국가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